엄마하고 아이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안전한 울타리를 먼저 쳐 주고, 아이에게 쉬운 부분만 넘겨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질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과 교사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 이렇게 두 팀을 만들어서 쌓기 나무로 모양을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하였다. 쌓기 나무의 결과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했던 실험이었다. 그 결과, 성적은 양 편 모두 비슷하게 나왔다. 그런데 문제 푸는 과정, 그 광경은 두 팀이 확연히 달랐다.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엄마가 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겨 주지 않았다. 엄마가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고 먼저 문제를 이해한 뒤, 어려운 부분은 엄마가 해결하고, 간단하고 쉬운 부분만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남겨 주었다.
반대로 교사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문제의 시작부터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교사와 아이가 같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문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엉켜 있는 실타래를 하나하나 같이 풀어 냈다.
성적의 결과는 비슷했지만, 문제를 푸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문제를 푸는 과정이나 모습도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먼저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문제가 무슨 뜻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게 아니라 엄마만 고민을 하고 그동안 가만히 있던 아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했던 것이고, 교사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처음부터 문제에서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해결 과정이 나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물품이 흔하지 않은 시대였다. 한정된 재료로 낭비 없이 물건을 만들어야 했던 엄마들에게는 실수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수는 곧 낭비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문제의 해석은 엄마들이 맡았던 것이고, 실수하지 않을 부분들만 아이들에게 시켰던 것이다.
반면에 교사와 아이가 짝을 지은 팀은 수학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을 같이 찾는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교사와 아이가 같이 문제를 해석하여 문제에서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았고, 그러면서 교사는 아이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응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혹시라도 아이가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이해하고, 그러면서 서로 배운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수학을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위의 두 경우와 같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학적 사고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수를 해야 하고, 그 실수는 당연하다. 다만 그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과 실수가 나왔을 때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의 간극만큼 달라진다.
엄마가 우리 아이를 지도하려고 할 때 단지 비용을 아끼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엄마가 아이를 지도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엄마가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 과정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결과, 당장의 성적을 원하는 것이라면 엄마가 직접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이다. 수학적 사고는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 내 듯 빠른 시간에 기계를 돌려 찍어 내려고 마음 먹어서는 절대 안된다. 옳은 대답이든 아니든 수학은 우리 아이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고, 어떻게 풀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에서 생산성보다는 수학적 반성의 사고가 훨씬 더 장기적으로 우리 아이에게 도움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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