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학교에서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힘을 쏟은 지도 꽤 되는 것 같다. 학교마다 학년별 필독도서와 권장도서를 정해 놓고, 독서기록장을 배부한 뒤, 꼭 독서기록장을 쓰게 하는 것도 이젠 학사 일정 중의 하나로 꼭 들어간다. 학기별, 학년별 다독상과 독서퀴즈 최우수상, 우수상 등 상장을 마련해 놓고, 아이들이 좋은 책을 가능한 많이 읽고, 정독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아이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요즘은 책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또래에서도 유독 책박사로 통하는 아이들도 꽤 많다. 다양한 책을 섭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내용도 많아지고, 아는 내용이 많으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한 권의 좋은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일찍이 책의 가치와 깊이를 깨달은 사람들은 책으로서 자식 교육을 시키고,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과거의 훌륭한 사람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그가 살아온 인생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옛 사람과 대화한다는 일은 어찌 보면 큰 축복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이들은 좋은 책을 읽기 보다는 읽기 편한 책을 읽는 것 같다. 만화로 꾸며진 한자책, 과학책, 역사책은 물론, 판타지 관한 책들을 즐겨 읽는다. 글자는 많이 수록되어 있지 않으면서 그림으로 채워진 책장을 휙휙 빠르게 넘기니 책을 읽는 재미도 붙을 만하다. 이런 만화류의 책들은 책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고, 줄글로 가득찬 책보다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으니 아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른들이 책을 골라주는 안목이다. 접근이 용이하고, 아이들이 읽고 편하다고 만화류나 판타지책만을 골라준다면,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은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다가도 책에 나온 구절 하나만으로 책을 덮고 그 구절을 깊이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런 책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내면적인 변화와 성숙을 준다. 마크 트웨인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은 당신으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고 하였다.

엄마들의 모임을 하다 보면, 너나 없이 자랑하는 것이 나오는데, 그 중 우리 아이 독서량 자랑은 끝이 없다. 은연 중에 우리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책을 읽은 수가 적다고 느껴지면, 모임에서는 내색하고 있지 않다가 집으로 돌아가 책부터 사는 엄마들도 많다. 수학도 수학이고, 영어도 영어이지만, 독서량도 옆집 아이보다는 뒤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 하는 것보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깊이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책을 읽기는 했으나, 읽은 책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거나 읽은 책의 줄거리도 가물가물해서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 당장 우리 아이 책 읽기를 그만두는 게 낫다. 머리 속으로, 마음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닌, 아이들 머리 밖으로, 마음 밖으로 책의 내용이 다 흩어지고 있다면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에 힘이 있는 책을 읽히기를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내용에 힘이 있는 책은 책장을 덮어도 그 책의 내용이 생각나는 책이다. 책과 현실과 연계성이 많아서 책과 같은 똑같은 상황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내용에 힘이 있는 책은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읽고 있는 책이다. 잠깐 반짝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읽혀서 내려온 책이다. 이런 책은 여러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읽어 왔기 때문에 읽을 때는 좀 힘들어도 평생 기억에 남을 책이다.

부디 우리 아이에게 이런 류의 책을 읽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가 책을 덮는 그 순간부터 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찰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류의 책을 골라주기를 바란다.